문 4.2019 민경채 상황판단 · 나책형
다음 글을 근거로 판단할 때 옳지 않은 것은?
조선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진지상을 수라상이라 하였다. 수라는 올리는 시간 순서에 따라 각각 조(朝)수라, 주(晝)수라, 석(夕)수라로 구분되고, 조수라 전에 밥 대신 죽을 주식으로 올리는 죽(粥)수라도 있었다. 수라상은 두 개의 상, 즉 원(元)반과 협(狹)반에 차려졌다. 수라 전후에 반과(盤果)상이나 미음(米飮)상이 차려지기도 했는데, 반과상은 올리는 시간 순서에 따라 조다(早茶), 주다(晝茶), 만다(晩茶), 야다(夜茶) 등을 앞에 붙여서 달리 불렀다. 반과상은 국수를 주식으로 하고, 찬과 후식류를 자기(磁器)에 담아 한 상에 차렸다. 미음상은 미음을 주식으로 하고, 육류 음식인 고음(膏飮)과 후식류를 한 상에 차렸다. 다음은 경복궁을출발한행차 첫째날과 둘째날에임금에게 올리기 위해 차린 전체 상차림이다. 첫째 날 둘째 날 장소 상차림 장소 상차림 노량참 조다반과 화성참 죽수라 노량참 조수라 화성참 조수라 시흥참 주다반과 화성참 주다반과 시흥참 석수라 화성참 석수라 시흥참 야다반과 화성참 야다반과 중로 미음
- ① 행차 둘째 날에 협반은 총 1회 사용되었다.
- ② 화성참에서는 미음이 주식인 상이 차려지지 않았다.
- ③ 행차 첫째 날 낮과 둘째 날 낮에는 주수라가 차려지지 않았다.
- ④ 행차 첫째 날 밤과 둘째 날 밤에는 후식류를 자기에 담은 상차림이 있었다.
- ⑤ 국수를 주식으로 한 상은 행차 첫째 날과 둘째 날을 통틀어 총 5회 차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