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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급 PSAT 언어논리 1번

2019 5급 공채 필기시험 · 언어논리영역 · 가책형

문 1.2019 5급 언어논리 · 가책형

다음 글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시대 국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중요 사건들을 정리한 기록물로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 이에 유네스코는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시기에 있었던 사건들이 담긴 조선왕조실록 총 1,893권, 888책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실록의 간행 과정은 상당히 길고 복잡했다. 먼저, 사관이 국왕의 공식적 언행과 주요 사건을 매일 기록하여 사초를 만들었다. 그 국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새 왕은 전왕(前王)의 실록을 만들기 위해 실록청을 세웠다. 이 실록청은 사초에 담긴 내용을 취사선택해 실록을 만든 후 해산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록은 전왕의 묘호(廟號)를 붙여 ‘○○실록’이라고 불렀다.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다보니 『철종실록』이 고종 때에 간행되었던 것이다. 한편 정변으로 왕이 바뀌었을 때에는 그 뒤를 이은 국왕이 실록청 대신 일기청을 설치하여 물러난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일을 ‘○○○일기(日記)’라는 명칭으로 정리해 간행했다. 인조 때 『광해군실록』이 아니라 『광해군일기』가 간행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기’는 명칭만 ‘실록’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 간행 과정은 그와 동일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된 것이다. 『단종실록』은 특이한 사례에 해당된다. 단종은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후에 노산군으로 불렸고, 그런 이유로 세조때『노산군일기』가간행되었다. 그런데숙종24년(1698)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된 후로 『노산군일기』를 『단종실록』 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조선 후기 붕당 간의 대립은 실록 내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조 때 동인과 서인이라는 붕당이 등장한 이래,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과 인조 때까지만 해도 붕당 간 대립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조의 뒤를 이어 효종, 현종, 숙종이 연이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붕당 간 대립이 심해졌다. 효종 때부터는 집권 붕당이 다른 붕당을 폄훼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져 있는실록을 수정해 간행하는일이벌어졌다. 수정된 실록에는 원래의 실록과 구분해 ‘○○수정실록’이라는 명칭을 따로 붙였다.

  1. ① 『효종실록』은 현종 때 설치된 실록청이 간행했을 것이다.
  2. ② 『노산군일기』는 숙종 때 설치된 일기청이 간행했을 것이다.
  3. ③ 『선조수정실록』은 광해군 때 설치된 실록청이 간행했을 것이다.
  4. ④ 『고종실록』은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5. ⑤ 『광해군일기』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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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사혁신처 2019 5급 PSAT 언어논리영역(가책형). 문제 원문은 공공저작물로, 원본 PDF에서 자동 추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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