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에 대한 분석으로 적절한 것만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 언어모형에 기반한 챗봇(이하 챗봇)과의 상호작용을 타인과의 대화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챗봇과 대화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에 대해 철학자 A는 챗봇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 사이의 대화에서 화자는 특정한 의도와 믿음을 지니고 발화하며, 청자는 자신의 믿음을 기초로 화자의 의도와 믿음을 추론한다. 즉 대화는 참여자가 의도와 믿음 같은 내적 상태를 가져야만 성립할 수 있는 상호작용인 것이다. 그러나 챗봇은 본질적으로 통계적 확률에 기반한 텍스트 생성 기계이기 때문에, 믿음이나 의도를 갖는 참여자가 될 수 없다. 한 마디로 챗봇은 청소기나 망치와 같은 도구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챗봇은 인간과 대화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산출하는 텍스트도 어떠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생성된 것이 아니기에 진정한 의미를 결여한다. 이 때문에 A는 인간과 챗봇의 상호 작용은 대화가 아니라 대화처럼 보이는 현상일 뿐이라고 본다. 한편 철학자 B는 챗봇이 산출하는 문장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는지, 챗봇과의 상호작용이 정말로 대화인지에 대한 판정을 아직 내릴 수 없다고 본다. 그는 인간 사이의 대화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상대방의 내적 상태가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양상이라고 주장한다. 챗봇과 대화한다고 말할 때도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챗봇 내부의 무언가가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상호작용의 양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참여자의 내적 상태에 근거하는 대화 판정 기준이 적절한지 의심해 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상호작용의 참여자들이 특정한 내적 상태를 가지는 것이 그 상호작용을 대화라고 판정하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조건이냐는 것이다.
<보 기>
ㄱ. A는 어떤 상호작용을 대화라고 판정하려면 그 상호작용의 참여자가 의도와 믿음 같은 내적 상태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ㄴ. B는 챗봇이 의도와 믿음을 지닌다고 본다.
ㄷ. A와 B는 모두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문장만이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 ① ㄱ
- ② ㄴ
- ③ ㄱ, ㄷ
- ④ ㄴ, ㄷ
- ⑤ ㄱ, ㄴ, ㄷ